토졍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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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제주킹 조회 4회 작성일 2025-06-01 21:43:4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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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전 – 기인(奇人) 개혁을 꿈꾸다, 토정 이지함

‘토정비결’의 저자로서 솥갓을 쓰고, 마포강가의 흙집에 산 기인(奇人)으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
그는 명문 사대부 집안 출신으로 스스로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 가난한 백성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준 시대의 귀인(貴人)이었다.

- ‘토정비결’의 미스터리, 왜 이지함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는가?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부터 매년 정월마다 토정비결을 보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토정비결’의 저자로서 미래를 점치는 기인(奇人)으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

"아내의 가문에 길할 기운이 없어 떠나지 않으면 장차 화가 저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

그는 장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것을 예견, 가솔을 이끌고 움직여 당대 최대의 정치적 무고사건인 청홍도 사건에서 살아남았으며, “15년 후에는 이 나라에 피가 천리나 흐를 징조이다.”라고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언하기도 했다.
이지함이 백성들의 고민거리를 풀어주고, 처방하기 위해 지은 책이라 알려진 ‘토정비결’ 그러나 ‘토정비결’에는 저자가 기록되어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풍속서 어디에서도 그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는데...
70% 이상이 행운의 괘로써 삶에 지친 민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책, ‘토정비결’ 저자를 둘러싼 미스터리 안에 이지함에 관한 진실이 담겨있다.

- 조선 최초의 양반 상인, 토정 이지함
이지함은 밥을 해먹기 좋도록 머리에 갓 대신 솥을 쓰고 다녔으며 마포강가에 흙집을 짓고 살았던 기인(奇人)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토정’을 지은 마포는 지방의 산물과 서울의 시장이 최초로 만나는 상업과 유통의 중심지였다. 이지함은 마포의 상인들과 어울리며 장사에 관한 살아있는 지식을 배우고, 직접 박 장사를 하여 막대한 부를 끌어 모으게 된다. 당대 최고 사대부집안의 자손이었던 이지함.
상업이 가장 천대받던 시대에 그는 양반으로서의 권위와 부를 버리고 스스로 사회의 밑바닥에 내려간 것이다.
이지함은 자신이 터득한 장사방법을 주민들에게 전수해주고, 축적한 곡식을 모두 빈민들에게 나누어준다. 양반인 그가 장사를 한 이유, 그것은 바로 빈민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 시대를 앞지른 선진적 경제사상을 발휘하다
쉰일곱이 되던 해, 재야에서 성리학 외의 다양한 학식을 접한 이지함에게 드디어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선조의 등극으로 정국이 바뀌면서 그가 관리로 등용된 것이다.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었던 이지함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은, 옥 등의 산림자원과 해양자원을 개발, 해외에서 유통 시키자고 주장한다.
소수 지배층들이 독식하고 있는 자원을 국가가 관리해서 외국과의 통상을 통해 부를 축적하자는 것이다. 이 해외통상론은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선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이지함은 시대를 앞선 선구적인 경제사상가였다.

-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백성을 가난에서 구제하고자 하는 열망은 이지함을 21세기형 복지가로 만든다. 민중들의 가난이 유난히도 가혹했던 조선 중기, 그는 현대적 개념의 빈민구제기관 걸인청을 설립한다. 걸인들에게 단지 먹고 잘 곳을 제공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고, 그가 직접 관리감독까지 하였다. 이런 이지함이 죽은 후 백성들을 마치 제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의 선정을 기리는 영모비를 세웠다.

"현감 이지함이 떠난 것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추모하기 위한 비"

한국사전 12회 – 기인(奇人) 개혁을 꿈꾸다, 토정 이지함 (2007.9.8.방송)
http://history.kbs.co.kr/

토정비결과 이지함 [127]

사람들이 ‘토정비결’은 잘 알지만 정작 토정 이지함 선생은 거의 모릅니다.
이지함은 보령 출신으로 조선 중기 학자이자 기인이었습니다.
‘토정비결’의 내용은 워낙 방대해서 이지함 혼자서 책을 완성했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토정비결’은 64개 주역 괘들을 2개씩 포개야 주석이 하나 나오게 돼 있습니다.
단순히 수학적으로 보면 64 x 64 = 4096 가지의 주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버린 조선의 노스트라다무스 토정 이지함과 토정비결이 주는 메시지

시대가 버린 조선의 노스트라다무스 토정 이지함과 토정비결이 주는 메시지 편입니다. 토정 이지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토정비결'일 것입니다. 그런데 '토정'이라는 호 외에는 토정비결의 저자가 토정 이지함이라는 역사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토정비결의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번 강연은 토정비결보다는 토정 이지함이 어떤 인물인가에 더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1. 조선의 괴짜
토정 이지함은 한산 이씨 가문의 자손으로 고려말 목은 이색의 6대손입니다. 그의 조카 이산해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을 만큼 알아주는 명문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적은 괴짜 그 자체였습니다. 머리에 갓 대신 솥을 쓰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나막신을 신고 다니고, 거지 같은 옷차림에 서서 자는 기행을 일삼았기 때문입니다. 명문가 집안의 양반이 왜 이런 기행을 했을까요?

2. 흙집에서 산 양반 상인
이지함은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무인도에 박을 심어 바가지를 만들고 그 바가지를 팔아 곡식을 사들였고, 이 곡식들을 모두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 진정 백성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흙집 위에 정자를 짓고 살았다고 해서 토정이라는 호를 얻었을 만큼 검소한 사람이었습니다.

3.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
토정 이지함은 율곡 이이 선생과 남명 조식 선생의 추천으로 포천 현감과 아산 현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포천 현감 시절에는 영국의 아담 스미스보다 200년이나 앞선 국부론을 주장했고, 아산 현감 시절에는 걸인청을 만들어 거지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자생할 수 있도록 하는 조선의 사회 복지 운동가 역할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이렇게 백성을 아끼고 사랑했던 토정 이지함 선생을 조선을 품지 못했고, 그는 가진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이질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인으로 알려진 이지함, 그는 진정한 애민을 보여준 시대를 뛰어넘는 개혁가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토정 이지함 선생과 그의 호가 붙은 토정비결이 간직한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강혜영의 친절한 역사이야기 제73편. 시대가 버린 조선의 노스트라다무스 토정 이지함과 토정비결이 주는 메시지 편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_ 일상의 인문학( @kbcthink )

[Chapters]
00:00 하이라이트
00:44 조선의 노스트라다무스 토정 이지함
02:58 1. 조선의 괴짜
10:57 2. 흙집에서 산 양반 상인
18:22 3.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
30:47 토정 이지함과 토정비결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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