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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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작가 조회 10회 작성일 2022-09-25 06:51:1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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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꿀잼신라] 천마총 금관의 주인...도대체 누구?!

3분만에 보는 국립경주박물관 꿀잼신라 1편
천마총 금관의 주인은 누구....?!
현미 賢美 : 중2 때였나 중3 때였나 국립경주박물관 갔었는데 유물들의 자태가 참말로 아름답던데요
왜 다들 그 아름다움을 몰라주나ㅠㅠ
Mom junjun : 영상 너무 잘 만드셨어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내용이었습니다!!
C W : 그 때 경주 갔을 때 이거 봤는데 정말 멋지더군요
5연상3연상 : 어제 다녀왔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닭다리 : 전 경주에 살아서 맨날 가요ㅎㅎ

신라금관의 비밀 (느티나무) [역사실험] KBS 2010.3.26 방송


SKY BLUE : 거인족이 쓰던 금관 스키타이는 거인이 많았던듯
yoonsang kim : 신라 초기 시대에 곡옥과 금장식으로 장식된 햋빛을 받아 반짝이는 화려한 금관을 착용한 왕이 말을타고 지나가면 그 위세란 대단 했을것이다 !
거의 신적인 존재감으로 천민들은 감히 쳐다 보지도 못했을것 같다 !
이러한 위세를 이용해서 나라를 관리 하고 국민을 통치 했을것이다 !
자녀교육최경선 : 신라금관 신비하고 아름답네요. 영상 감사히 보았습니다.
셩샤인 : 제사지낼때 쓴게 아닐까

KBS 역사스페셜 – 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편 금관은 왜 사라졌는가

- 천마총, 환두대도를 찬 금관의 주인공
경주 대릉원에서 발견된 천마총 금관. 천마총의 피장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황금 제품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허리춤에서 발견된 ‘환두대도’는 무덤 주인의 신분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었다. 봉황문 황두대도를 허리에 차고 화려한 금관을 쓴 천마총의 피장자는 바로 신라왕이었던 것이다.

- 금관은 왕의 전유물이 아니다
천마총 금관 발굴 당시 학계는 금관은 왕이 쓰는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남대총 출토 금관은 우리의 상식을 흔들었다. 황남대총은 북분과 남분이 잇대어 조성된 큰 무덤인데 남분에서는 많은 양의 무기류가 출토됐고 피장자의 머리 부분에서는 금동관이
발견됐다. 피장자는 60대에 숨진 신라왕으로 추정됐다.
남분에서는 금동관과 함께 엄청난 양의 장신구가 발견됐다.
특히 은제 허리띠에 새겨진 ‘부인대’라는 글씨는 여자가 사용하는 띠라는 뜻의 명문이었던 것이다. 북분의 주인공은 왕비로 왕의 전유물로 알려졌던 신라 금관을 왕비도 썼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금령총의 유물추적을 통해 15세 왕족도 금관을 착장한 사실이 밝혀졌다.

- 신라 김씨 왕족, 금관의 시대를 열다
미추왕 이후 왕권은 석씨에게로 넘어갔다. 그러나, 다시 힘을 모은 김씨계는 석씨를 물리치고 왕권을 집권한다. 4세기 말 바로 내물왕 때다. 내물왕은 왕호를 ‘이사금’ 대신 ‘마립간’으로 바꾸고 첫 번째 마립간으로 올랐다. 왕위쟁탈전 최후의 승자인 김씨 왕족이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낸 것이다.
김씨 왕족의 전용 묘역인 대릉원의 무덤도 마립간의 권위에 걸맞게 크고 웅장한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조성했고 무덤에 넣는 부장품도 화려한 황금 유물로 채웠다. 마립간의 우월적 지위를 나타내기 위한 상징으로 금관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절대적인 존재 ‘마립간’
마립간은 모든 신라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궁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역할도 겸했다. 마립간이 쓴 금관은 신과 신라를 이어주는 국가제사장의 상징과 동시에 현실정치를 구현하는 절대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 중앙 유라시아 초원지대에 존재한 금관
신라인의 뛰어난 미적 감각과 왕족의 위엄이 녹아있는 신라 금관! 이 중에서도 세 그루의 나무와 사슴뿔을 모티브로 형상화한 신라금관 장식은 금관의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이 독특한 장식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것은 다른 세계와의 연결이었다. 바로 중앙 유리시아 초원지대가 활동무대였던 북방유목민의 세계이다.
제작진은 북방유목민의 금관을 찾아 카자흐스탄으로 떠났다.
제작진은 카자흐스탄 에르미타주 박물관 전시 중인 사르마트 금관과 크라스노야르스크 박물관에 보관 중인 사슴뿔 관을 찾아볼 수 있었다. 신라보다 앞선 시기에 동일한 모티브의 금관이 중앙아시아 북부에 존재했던 것이다.

- 6세기, 신라 금관은 왜 사라졌나?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은 불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그에 따라 신라사회 전반에 개혁이 일어났다. 마립간 시대의 거대한 무덤은 사라지고 거대한 국가사찰이 들어섰다.
신라 최대 규모의 사찰인 황룡사를 조성하기 시작했고 무덤 속 황금은 황금빛 부처로 바뀌었다. 황룡사에서 출토된 황금사리장엄 유물은 김씨 왕족의 황금문화가 무덤을 떠나 탑으로 옮겨왔음을 보여준다. 김씨 왕족과 함께 사라진 금관!
금관은 왜 사라졌을까?

신역사스페셜 51회 – 수수께끼의 나라 신라, 2편 금관은 왜 사라졌는가 (2010.11.25. 방송)
http://history.kbs.co.kr/
니나노 : 넷플릭스와 계약이 시급합니다ㅠ 역사스페셜 자료들 영어 자막 작업해서 넷플릭스에 올라오면 참 좋겠어요.. 모든 자료를 다 못 올리더라도 중요했던 내용들만이라도... 세계인들과 공유하고싶어요.. 죄다 우리가 일본한테 배운건중 알아서 열받아요.. 일본이 우리의 속국이었는데... 그런 자료를 좀 널리 알렸으면...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힘을... 역사의 힘을...
선영 김 : 신라 김씨왕족들 정말 대단했네요
정말 신비롭고 멋진거 같아요❤
Mina Heart : 한상권아나운서님과 성우님도 넘 멋집니다. 좋은방송을 더 돋보이게해주시는듯
노노수진 : 저런 엄청난 유물이 나온 무덤주인이 누군지 모른다는게 정말 아쉽네요
뿌잉뿌잉 : 황금인간 너무 정교하고 멋있어요 누가이시대에 저렇게 만들수있을까요

... 

#신라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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