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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진원TIP's 7탄] 감자, 어디까지 알고있니? 감자에 대한 모든 것 7편 #shorts
[농진원TIP's 7탄] 감자, 어디까지 알고있니? 감자에 대한 모든 것 7편 #shorts
니취팔뤄망 : 어 그럼 회오리 감자 에다가 설탕 케찹 뿌려먹어도 돼요?
오늘의 책추천 * 글도] 김동인 이야기-『감자』를 중심으로
구독은 사랑입니다 ♥
오늘 살펴볼 오늘의 책은 금동 김동인과 그의 단편소설 『감자』입니다. 김동인하면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이광수와 함께 선구자적 위치에 자리잡은 초창기의 문인입니다. 누구보다도 이광수에 대한 강한 대타의식을 지닌 작가였고, 이광수만큼이나 좌익계 문인들로부터 질타와 배척의 대상이 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김동인이 좌익계 인사들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의 약점 때문이겠지만, 그가 지닌 장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동인이 가장 크게 욕을 먹는 것은 그가 일제에 부역한 친일작가라는 점에서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도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작가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좌익계 인사들이 김동인을 폄하하고 질시하는 이유는 꼭 여기에만 국한된다고 보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김동인은 평양의 개신교 유지집안의 아들로 그 집안사람들 가운데 대한민국 탄생에 깊게 관여한 인물이 있습니다. 좌익계 인사들이 대한민국을 타도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된 집안출신인 김동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는 것은 필연적이라 하겠습니다.
김동인은 초창기 일본유학파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이광수와 마찬가지이지요. 물론 중도에 중퇴한 경우이긴 하지만, 2.8독립선언에 참여하고 잠깐 감방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김동인은 상당한 자산가이기도 했습니다. 17세 때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나이에 이미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러나 말년에 김동인은 가난에 쪼달리게 되고 객사했다는 소문마저 들려옵니다. 그 사이 재산을 탕진하고 심히 영락한 상태가 되었음을 살필 수 있습니다. 혹자는 김동인이 낭비벽이 심한데다 사업이란 것을 잘 모르면서 잘못 투자하여 재산을 날렸다고 합니다. 또 혹자는 김동인이 한국문학을 깊이 사랑한 탓에 그리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동인이 젊어서부터 잡지를 만들고 책을 내고 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수많은 돈을 문학판에 쏟아부은 것은 객관적 사실입니다. 문학판에 돈을 쓰기를 아끼지 않았던 보기드문 인물이 김동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 김동인은 1919년 『창조』 그리고 1924년 『영대』라는 잡지를 만들어 활동하는데 모두 사비를 들여서 창간한 잡지들이었습니다. 순수문예지였고 이들 잡지를 만들어 활동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광수에 대한 대타의식을 강하게 지닌, 근대문학의 선구자적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시기였습니다.
김동인은 이광수의 문학을 민족이야기를 주로 하는 계몽주의 문학이라고 규정하고 이는 근대문학의 본류가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라는 민족아가 아닌 ‘그’라는 개아가 담긴 문학을 근대문학의 본류라고 주장하는데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동인이 ‘그’라는 삼인칭 지시어를 처음 한국문학에 도입한 게 자신이라고 극구 주장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게 그래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한국문학사에서 처음으로 하고 있는 게 자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그‘라는 개인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게 근대문학의 본류라는 것을 의식한 한국문단 최초의 인물이 자신이었다는 점에서 이와같은 주장을 펼쳤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동인은 일본의 사소설에 상당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본의 사소설이야말로 ’그‘의 이야기이고 일본문학이 코징 즉 개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나름으로 접근한 문학적 노력이요 성과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앞서 지적한 좌익계 인사들이 특별히 김동인을 싫어하게 되는 그 이유의 저변을 또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의 현 좌익계 문단은 민족이야기라는 거대담론에 낚여 있는 상태여서 ‘그’ 또는 ‘그녀’ 등등의 개인적 이야기에 깊은 알레르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이들은 이광수와 동질적이며 이광수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우익계 민족문학이라는 범주를 설정해서 자신들과의 친연성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헌데, 김동인의 경우는 여기에도 속하기 어려운 경우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김동인의 ‘그’ 즉 ‘그’의 이야기는 일제기 조선사회에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일제에 대한 대타의식을 통하여 겨우 ‘민족아’라는 집단아가 형성 자리잡아가는 시기가 일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라는 개아의 형성은 아직 시기상조였고 형성의 조짐은 충분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리잡기에는 여건상 어려운 시기였다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 그것은 21세기로 넘어온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흔들리는 불안한 형태로밖에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동인의 ‘그’는 분명 선각자적인 것이었지만, 한국사회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자리잡는 데에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불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김동인의 초창기 문학이 파산했고 파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동인도 ‘그’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이야기 즉 민족이라는 집단의 이야기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시기와 김동인이 잘못된 투자로 자산을 탕진한 시기가 겹칩니다. 김동인의 문학은 자신이 그렇게 질타해마지 않았던 이광수의 문학을 닮아가고 이와 유사해지게 되는데, 그러면서 그의 소설의 분량도 길어지게 됩니다. 즉, 장편화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이제 김동인은 자신이 그렇게 비판하던 역사소설도 쓰게 됩니다. 이광수의 『단종애사』가 대히트친 것을 보고 이를 비판하면서도 이와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대수양』이라는 역사소설을 씁니다. 이광수의 단종애사가 단종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라면 김동인의 『대수양』은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입니다. 이광수의 아류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김동인은 이광수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합니다. 민족이야기의 마술사는 역시 이광수이지 김동인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 흥선대원군을 다룬 『운현궁의 봄』은 작품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성공적인 작품으로 자리잡습니다.
그러나 역시 김동인은 단편소설에서 더욱 볼만한 게 있다고 하겠습니다. 단편소설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게 사실이고 문단의 후배들에게도 상당정도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확실합니다.
김동인의 『감자』는 1925년 작품입니다. 여기서는 ‘그’가 아닌 ‘복녀’라는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당대 농촌사회의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는 단편으로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으로 분류됩니다. 한국판 『여자의 일생』을 그리고 싶어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복녀‘라는 여주인공의 일생을 비극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사실상 매매혼으로 결혼한 복녀는 가난 속에 살다 빈민구제사업에서 만난 감독에게 몸을 주고 편하게 사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중국인 왕서방을 만나 그의 정부로서 지내게 되는데, 빈민굴의 부자로서 등극하게 됩니다. 왕서방이 젊은 처자를 맞아 결혼하게 되자 강한 질투와 위기감을 느낀 복녀는 낫을 들고 신방에 쳐들어갔다가 오히려 자신이 목숨을 잃고 만다는, 대강의 줄거리입니다. 지금 보면 진부한 이야기입니다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이야기였을 게 틀림없습니다. 특별히 매매혼이 당시 가난한 서민들의 일반적인 결혼방식이었음에 놀라움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일제가 심어놓은 게 아니라 그 이전 조선시대부터 자리잡고 있던 게 분명합니다. 가난의 굴레가 심했던 것은 조선시대가 더했던 탓입니다.
헌데, 김동인의 『감자』의 소설공간은 김유정의 『소낙비』의 소설공간과 유사성이 깊습니다. 김동인의 『감자』의 소설공간이 김유정의 『소낙비』의 소설공간으로 옮겨가 해학과 골계미가 더해지는 양상으로 발전해간 게 아닐까 합니다. 김동인처럼 비극적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좀더 ‘그녀’의 이야기가 선명해지고 해학성이 농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완연하지만, 『감자』의 소설공간이 소낙비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만큼은 틀림없습니다. 김유정의 농촌소설이 선배작가인 김동인의 작업에 일정정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읽혀지는 탓입니다.
김동인의 ’그‘ 또는 ’그녀‘의 이야기는 이렇게 소략하게나마 후대로 이어져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습니다. 한국문학사 속에서는 그 존재감이 거의 미미한 것이긴 하지만 ’그‘ 또는 ’그녀‘라는 개인의 이야기들이 이렇게나마 명맥을 유지하며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 금동 김동인의 『감자』를 중심으로 하는 단편소설을 통해서나마 느낄 수 있는 즐거움입니다만. 이게 김동인 문학의 미덕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미진한 감이 있는 것은 다음 회로 넘기기로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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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펴볼 오늘의 책은 금동 김동인과 그의 단편소설 『감자』입니다. 김동인하면 우리 근대문학사에서 이광수와 함께 선구자적 위치에 자리잡은 초창기의 문인입니다. 누구보다도 이광수에 대한 강한 대타의식을 지닌 작가였고, 이광수만큼이나 좌익계 문인들로부터 질타와 배척의 대상이 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김동인이 좌익계 인사들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의 약점 때문이겠지만, 그가 지닌 장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동인이 가장 크게 욕을 먹는 것은 그가 일제에 부역한 친일작가라는 점에서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도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작가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좌익계 인사들이 김동인을 폄하하고 질시하는 이유는 꼭 여기에만 국한된다고 보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김동인은 평양의 개신교 유지집안의 아들로 그 집안사람들 가운데 대한민국 탄생에 깊게 관여한 인물이 있습니다. 좌익계 인사들이 대한민국을 타도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된 집안출신인 김동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는 것은 필연적이라 하겠습니다.
김동인은 초창기 일본유학파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이광수와 마찬가지이지요. 물론 중도에 중퇴한 경우이긴 하지만, 2.8독립선언에 참여하고 잠깐 감방신세를 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김동인은 상당한 자산가이기도 했습니다. 17세 때인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나이에 이미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러나 말년에 김동인은 가난에 쪼달리게 되고 객사했다는 소문마저 들려옵니다. 그 사이 재산을 탕진하고 심히 영락한 상태가 되었음을 살필 수 있습니다. 혹자는 김동인이 낭비벽이 심한데다 사업이란 것을 잘 모르면서 잘못 투자하여 재산을 날렸다고 합니다. 또 혹자는 김동인이 한국문학을 깊이 사랑한 탓에 그리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동인이 젊어서부터 잡지를 만들고 책을 내고 하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수많은 돈을 문학판에 쏟아부은 것은 객관적 사실입니다. 문학판에 돈을 쓰기를 아끼지 않았던 보기드문 인물이 김동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 김동인은 1919년 『창조』 그리고 1924년 『영대』라는 잡지를 만들어 활동하는데 모두 사비를 들여서 창간한 잡지들이었습니다. 순수문예지였고 이들 잡지를 만들어 활동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광수에 대한 대타의식을 강하게 지닌, 근대문학의 선구자적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시기였습니다.
김동인은 이광수의 문학을 민족이야기를 주로 하는 계몽주의 문학이라고 규정하고 이는 근대문학의 본류가 아니라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이라는 민족아가 아닌 ‘그’라는 개아가 담긴 문학을 근대문학의 본류라고 주장하는데 일리가 있는 주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동인이 ‘그’라는 삼인칭 지시어를 처음 한국문학에 도입한 게 자신이라고 극구 주장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게 그래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한국문학사에서 처음으로 하고 있는 게 자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그‘라는 개인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게 근대문학의 본류라는 것을 의식한 한국문단 최초의 인물이 자신이었다는 점에서 이와같은 주장을 펼쳤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동인은 일본의 사소설에 상당정도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본의 사소설이야말로 ’그‘의 이야기이고 일본문학이 코징 즉 개인을 이해하기 위하여 나름으로 접근한 문학적 노력이요 성과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앞서 지적한 좌익계 인사들이 특별히 김동인을 싫어하게 되는 그 이유의 저변을 또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의 현 좌익계 문단은 민족이야기라는 거대담론에 낚여 있는 상태여서 ‘그’ 또는 ‘그녀’ 등등의 개인적 이야기에 깊은 알레르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이들은 이광수와 동질적이며 이광수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우익계 민족문학이라는 범주를 설정해서 자신들과의 친연성을 인정하기도 합니다. 헌데, 김동인의 경우는 여기에도 속하기 어려운 경우가 되는 겁니다.
그러나 김동인의 ‘그’ 즉 ‘그’의 이야기는 일제기 조선사회에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일제에 대한 대타의식을 통하여 겨우 ‘민족아’라는 집단아가 형성 자리잡아가는 시기가 일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라는 개아의 형성은 아직 시기상조였고 형성의 조짐은 충분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리잡기에는 여건상 어려운 시기였다고 보는 게 옳겠습니다. 그것은 21세기로 넘어온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히 흔들리는 불안한 형태로밖에는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김동인의 ‘그’는 분명 선각자적인 것이었지만, 한국사회의 입장에서는 이것이 자리잡는 데에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불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김동인의 초창기 문학이 파산했고 파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동인도 ‘그’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이야기 즉 민족이라는 집단의 이야기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시기와 김동인이 잘못된 투자로 자산을 탕진한 시기가 겹칩니다. 김동인의 문학은 자신이 그렇게 질타해마지 않았던 이광수의 문학을 닮아가고 이와 유사해지게 되는데, 그러면서 그의 소설의 분량도 길어지게 됩니다. 즉, 장편화하는 경향을 보이게 됩니다.
이제 김동인은 자신이 그렇게 비판하던 역사소설도 쓰게 됩니다. 이광수의 『단종애사』가 대히트친 것을 보고 이를 비판하면서도 이와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대수양』이라는 역사소설을 씁니다. 이광수의 단종애사가 단종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이라면 김동인의 『대수양』은 수양대군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입니다. 이광수의 아류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김동인은 이광수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합니다. 민족이야기의 마술사는 역시 이광수이지 김동인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당연한 귀결이었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나온 흥선대원군을 다룬 『운현궁의 봄』은 작품적으로나 흥행적으로나 성공적인 작품으로 자리잡습니다.
그러나 역시 김동인은 단편소설에서 더욱 볼만한 게 있다고 하겠습니다. 단편소설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게 사실이고 문단의 후배들에게도 상당정도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확실합니다.
김동인의 『감자』는 1925년 작품입니다. 여기서는 ‘그’가 아닌 ‘복녀’라는 그녀‘의 이야기입니다. 당대 농촌사회의 타락상을 보여주고 있는 단편으로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으로 분류됩니다. 한국판 『여자의 일생』을 그리고 싶어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복녀‘라는 여주인공의 일생을 비극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사실상 매매혼으로 결혼한 복녀는 가난 속에 살다 빈민구제사업에서 만난 감독에게 몸을 주고 편하게 사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중국인 왕서방을 만나 그의 정부로서 지내게 되는데, 빈민굴의 부자로서 등극하게 됩니다. 왕서방이 젊은 처자를 맞아 결혼하게 되자 강한 질투와 위기감을 느낀 복녀는 낫을 들고 신방에 쳐들어갔다가 오히려 자신이 목숨을 잃고 만다는, 대강의 줄거리입니다. 지금 보면 진부한 이야기입니다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이야기였을 게 틀림없습니다. 특별히 매매혼이 당시 가난한 서민들의 일반적인 결혼방식이었음에 놀라움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일제가 심어놓은 게 아니라 그 이전 조선시대부터 자리잡고 있던 게 분명합니다. 가난의 굴레가 심했던 것은 조선시대가 더했던 탓입니다.
헌데, 김동인의 『감자』의 소설공간은 김유정의 『소낙비』의 소설공간과 유사성이 깊습니다. 김동인의 『감자』의 소설공간이 김유정의 『소낙비』의 소설공간으로 옮겨가 해학과 골계미가 더해지는 양상으로 발전해간 게 아닐까 합니다. 김동인처럼 비극적 공간에만 머물지 않고 좀더 ‘그녀’의 이야기가 선명해지고 해학성이 농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완연하지만, 『감자』의 소설공간이 소낙비의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만큼은 틀림없습니다. 김유정의 농촌소설이 선배작가인 김동인의 작업에 일정정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읽혀지는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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