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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의 조건
[그녀의북살롱] 포스트 모더니즘의 조건_리오타르_정희진
포스트 모더니즘의 조건
'정희진처럼 읽기'라는 책 속의 한 챕터를 읽어드려요~
'포스트(post)'에 대한 담론 되시겠습니다~
아래는 낭독 동영상 링크에요ㆍ 유튜브용~
아래는 음성버전 팟캐스트 구요~
포스트는 최근 인류 300년 역사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담론이다. 이 논쟁에서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시간은 순서가 아니라는 것,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순으로 흘러 앞으로 나아간다는 개념은 근대에 고안된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언제가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미래는, 오지 않는 현재의 연속일 뿐이다. 스티브 잡스, 피터 드러커, 앨빈 토플러, 등 혁신가들의 말대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은 직접 실현하는 일뿐이다.
나는 미래에 관심이 없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인생은 '사후 해석'이다. 그때 혹은 지금 일어난 일의 의미를 당시에 아는 사람은 없다. 나중에 ' 주변'이 정리된 후' 즉 맥락이 생긴 후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해석이며, 이는 사건 이후의 삶에 따라 달라진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관련한 가장 첨예한 쟁점은 포스트(post)라는 접두사의 해석에 있다. 프랑스어에서 시작된 용어가 영문학에서 주로 연구되었으니 두 언어의 차이에다 영어의 포스트틑 의미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후, 탈, 반대, ~넘어서, ~위에... 시간적 의미에서는 후에 오는 것 같지만, 공간적으로는 뒤에 위치한다고 생각하므로 이전을 뜻하기도 한다.
포스트는 최근 인류 300년 역사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담론이다. 이 논쟁에서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시간은 순서가 아니라는 것,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순으로 흘러 앞으로 나아간다는 개념은 근대에 고안된 것이다.
흔히 생각하듯 봉건 다음에 근대, 근대 다음에 탈근대가 아니다. '근대가 실현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탈근대?"라든가, "시대 착오, 시기상조"식의 논쟁 구도는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직선적 시간은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이전의 시간 개념은 내부가 닫힌 순환하는 원의 구조로서 미래라는 개념이 없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고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의 부제도 시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식의 문제(a report on knowledge)'이다. 총체적 거대 서사에 대한 비판과 재현(표상)의 위기, 인식의 안정성, 확실함, 합리성, 이런 가치들이 도전받기 시작했다. 리오타르의 주장은 서구가 독점했던 단일 주체의 단일 시간에 대한 성찰이다.
하지만 사실과 언어의 불일치는 본디 당연한 것이다. 이 혼란이 민주주의이고 탈식민주의다. 서구가 '지리상의 발견'을 했다면 우리는 발견된 '것들'인가? 근대의 주체가 개척하는 인간이라면, 개척당한 자연은 근대의 타자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모던의 기준이 백인 남성이라면, 흑인이나 여성은 그 자체로 포스트모던한 존재가 된다.
포스트는 실제 이후가 아니라 인식 이후를 말한다. 포스트모던은 기존 역사를 혼란시키기 위한 것으로 모던과 갈등을 일으키는 모든 개념을 말한다. " 포스트 모던은 근대성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어느덧! 하루는 지루한데 일주일은 빨리 가고 일 년은 더 빨리 갈 때가 있다. 이처럼 시간은 저절로 '가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붙잡을 것인가, 따라잡아야만 하는가. 이는 고달픈 삶일 뿐 아니라 불공정 경쟁을 피할수 없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않다.
포스트는 전후의 문제가 아니다. 포스트의 시간성에 대한 사유는 전진해야만 하는 삶에 태클을 건다. 시간을 따라잡기보다 따돌리자. '지금 여기' 에 '가는 시간'을 넘어 뜨려야 한다.
포스트 - 포스트모던의 조건,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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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더니즘 쉽게 알기 ; 뇌섹남 뇌섹녀 어필 교양 #3
포스트 모더니즘
우리는 이제 '포스트 모더니즘 적이다.' 라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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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모더니즘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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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는 최근 인류 300년 역사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담론이다. 이 논쟁에서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시간은 순서가 아니라는 것,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순으로 흘러 앞으로 나아간다는 개념은 근대에 고안된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언제가 미래가 아니라 과거다. 미래는, 오지 않는 현재의 연속일 뿐이다. 스티브 잡스, 피터 드러커, 앨빈 토플러, 등 혁신가들의 말대로,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은 직접 실현하는 일뿐이다.
나는 미래에 관심이 없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인생은 '사후 해석'이다. 그때 혹은 지금 일어난 일의 의미를 당시에 아는 사람은 없다. 나중에 ' 주변'이 정리된 후' 즉 맥락이 생긴 후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해석이며, 이는 사건 이후의 삶에 따라 달라진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관련한 가장 첨예한 쟁점은 포스트(post)라는 접두사의 해석에 있다. 프랑스어에서 시작된 용어가 영문학에서 주로 연구되었으니 두 언어의 차이에다 영어의 포스트틑 의미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후, 탈, 반대, ~넘어서, ~위에... 시간적 의미에서는 후에 오는 것 같지만, 공간적으로는 뒤에 위치한다고 생각하므로 이전을 뜻하기도 한다.
포스트는 최근 인류 300년 역사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담론이다. 이 논쟁에서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시간은 순서가 아니라는 것,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순으로 흘러 앞으로 나아간다는 개념은 근대에 고안된 것이다.
흔히 생각하듯 봉건 다음에 근대, 근대 다음에 탈근대가 아니다. '근대가 실현되지도 않았는데 무슨 탈근대?"라든가, "시대 착오, 시기상조"식의 논쟁 구도는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직선적 시간은 근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이전의 시간 개념은 내부가 닫힌 순환하는 원의 구조로서 미래라는 개념이 없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고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의 부제도 시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지식의 문제(a report on knowledge)'이다. 총체적 거대 서사에 대한 비판과 재현(표상)의 위기, 인식의 안정성, 확실함, 합리성, 이런 가치들이 도전받기 시작했다. 리오타르의 주장은 서구가 독점했던 단일 주체의 단일 시간에 대한 성찰이다.
하지만 사실과 언어의 불일치는 본디 당연한 것이다. 이 혼란이 민주주의이고 탈식민주의다. 서구가 '지리상의 발견'을 했다면 우리는 발견된 '것들'인가? 근대의 주체가 개척하는 인간이라면, 개척당한 자연은 근대의 타자일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모던의 기준이 백인 남성이라면, 흑인이나 여성은 그 자체로 포스트모던한 존재가 된다.
포스트는 실제 이후가 아니라 인식 이후를 말한다. 포스트모던은 기존 역사를 혼란시키기 위한 것으로 모던과 갈등을 일으키는 모든 개념을 말한다. " 포스트 모던은 근대성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어느덧! 하루는 지루한데 일주일은 빨리 가고 일 년은 더 빨리 갈 때가 있다. 이처럼 시간은 저절로 '가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붙잡을 것인가, 따라잡아야만 하는가. 이는 고달픈 삶일 뿐 아니라 불공정 경쟁을 피할수 없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않다.
포스트는 전후의 문제가 아니다. 포스트의 시간성에 대한 사유는 전진해야만 하는 삶에 태클을 건다. 시간을 따라잡기보다 따돌리자. '지금 여기' 에 '가는 시간'을 넘어 뜨려야 한다.
포스트 - 포스트모던의 조건,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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