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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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전 – 기인(奇人) 개혁을 꿈꾸다, 토정 이지함
‘토정비결’의 저자로서 솥갓을 쓰고, 마포강가의 흙집에 산 기인(奇人)으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
그는 명문 사대부 집안 출신으로 스스로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 가난한 백성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준 시대의 귀인(貴人)이었다.
- ‘토정비결’의 미스터리, 왜 이지함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는가?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부터 매년 정월마다 토정비결을 보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토정비결’의 저자로서 미래를 점치는 기인(奇人)으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
"아내의 가문에 길할 기운이 없어 떠나지 않으면 장차 화가 저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
그는 장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것을 예견, 가솔을 이끌고 움직여 당대 최대의 정치적 무고사건인 청홍도 사건에서 살아남았으며, “15년 후에는 이 나라에 피가 천리나 흐를 징조이다.”라고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언하기도 했다.
이지함이 백성들의 고민거리를 풀어주고, 처방하기 위해 지은 책이라 알려진 ‘토정비결’ 그러나 ‘토정비결’에는 저자가 기록되어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풍속서 어디에서도 그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는데...
70% 이상이 행운의 괘로써 삶에 지친 민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책, ‘토정비결’ 저자를 둘러싼 미스터리 안에 이지함에 관한 진실이 담겨있다.
- 조선 최초의 양반 상인, 토정 이지함
이지함은 밥을 해먹기 좋도록 머리에 갓 대신 솥을 쓰고 다녔으며 마포강가에 흙집을 짓고 살았던 기인(奇人)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토정’을 지은 마포는 지방의 산물과 서울의 시장이 최초로 만나는 상업과 유통의 중심지였다. 이지함은 마포의 상인들과 어울리며 장사에 관한 살아있는 지식을 배우고, 직접 박 장사를 하여 막대한 부를 끌어 모으게 된다. 당대 최고 사대부집안의 자손이었던 이지함.
상업이 가장 천대받던 시대에 그는 양반으로서의 권위와 부를 버리고 스스로 사회의 밑바닥에 내려간 것이다.
이지함은 자신이 터득한 장사방법을 주민들에게 전수해주고, 축적한 곡식을 모두 빈민들에게 나누어준다. 양반인 그가 장사를 한 이유, 그것은 바로 빈민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 시대를 앞지른 선진적 경제사상을 발휘하다
쉰일곱이 되던 해, 재야에서 성리학 외의 다양한 학식을 접한 이지함에게 드디어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선조의 등극으로 정국이 바뀌면서 그가 관리로 등용된 것이다.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었던 이지함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은, 옥 등의 산림자원과 해양자원을 개발, 해외에서 유통 시키자고 주장한다.
소수 지배층들이 독식하고 있는 자원을 국가가 관리해서 외국과의 통상을 통해 부를 축적하자는 것이다. 이 해외통상론은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선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이지함은 시대를 앞선 선구적인 경제사상가였다.
-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백성을 가난에서 구제하고자 하는 열망은 이지함을 21세기형 복지가로 만든다. 민중들의 가난이 유난히도 가혹했던 조선 중기, 그는 현대적 개념의 빈민구제기관 걸인청을 설립한다. 걸인들에게 단지 먹고 잘 곳을 제공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고, 그가 직접 관리감독까지 하였다. 이런 이지함이 죽은 후 백성들을 마치 제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의 선정을 기리는 영모비를 세웠다.
"현감 이지함이 떠난 것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추모하기 위한 비"
한국사전 12회 – 기인(奇人) 개혁을 꿈꾸다, 토정 이지함 (2007.9.8.방송)
http://history.kbs.co.kr/
mi Yu :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셨네요.. 지금의 위정자들이 보고 배워야겠습니다!
네잎클로버 : 백성의 아버지 토정 이지함 같은 휼륭한 우리 조상님들 덕분에 우리 후손들이 굶주리지 않고 편안하게 살고 있지 않나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은샘 : 무속인 기질을 지닌 천재인 줄만 알았는데 애민사상의 실천가였네요.
나라의 리더들이 이지함 같으면 이 세상은 천국일텐데..........
짝짝짝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 왜 이런 위대한 분들이 역사에 묻혀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ㅠ 유익한 방송 감사합니다 짝짝짝
Hansol Jeong : 진짜 시간을 거슬러갔다가 보아도 될 정도의 인물이네요. 당대 최고의 민정가인 거 같습니다
[전설야담] 토정 이지함, 관상에 얽힌 두 가지 일화 [만물유래][전설따라 삼천리]
국내 독보적인 유래 전문 콘텐츠 사이트 만물유래(originbox.co.kr)가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삼각세모 : 선한 일을 하면 복받는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재미있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눈에 관한 관상(觀相)중에 삼백안(三白眼)이 있다. 눈동자가 눈 가운데 있지 않고 아래에 있는 것을 상삼백안, 눈동자가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을 하삼백안이라한다 둘다 매우 안좋은 관상
강릉머스매-펄스TV : 재밌습니다
kevin h. park : 자네는 병원을 차리게
피부과를 차리면 크게……
[전설야담] 토정 이지함과 이상한 지게꾼 [만물유래][어원 찾아 삼만리][전설따라 삼천리][전설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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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지발리성철 : 토정이 청주 우암산에 있는 명당 자리를 아무도 건들지 못하게 경고했으나 어느 사이비 지관이 그걸 무시하고 건드렸다가 큰 봉변을 당한 일화도 있지요. 혹시 그 일화도 훗날 소개시켜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홍창식 : 잠깐들어와 보니
마치 오래전 밤에
라디오에서하던
전설따라 삼천리 를
듣는듯한 기분이드네요.
재미있게 잘들었습니다.
CH L : 잘 보았습니다.
시리즈가 계속 되기를!
이부자 : 사람은 남의말에 경청할줄 알아야하고
믿음과 지혜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것
잘배우고 뜻깊게 담아봅니다.
hollywood park : 옛날 '소설 토정비결'을 읽고서 토정 이지함에 대하여 조금 알 수 있었지요.
‘토정비결’의 저자로서 솥갓을 쓰고, 마포강가의 흙집에 산 기인(奇人)으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
그는 명문 사대부 집안 출신으로 스스로 사회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 가난한 백성들의 고통을 어루만져준 시대의 귀인(貴人)이었다.
- ‘토정비결’의 미스터리, 왜 이지함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는가?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부터 매년 정월마다 토정비결을 보는 풍습이 전해오고 있다. ‘토정비결’의 저자로서 미래를 점치는 기인(奇人)으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
"아내의 가문에 길할 기운이 없어 떠나지 않으면 장차 화가 저에게까지 미칠 것입니다."
그는 장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 것을 예견, 가솔을 이끌고 움직여 당대 최대의 정치적 무고사건인 청홍도 사건에서 살아남았으며, “15년 후에는 이 나라에 피가 천리나 흐를 징조이다.”라고 일찍이 임진왜란을 예언하기도 했다.
이지함이 백성들의 고민거리를 풀어주고, 처방하기 위해 지은 책이라 알려진 ‘토정비결’ 그러나 ‘토정비결’에는 저자가 기록되어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조선의 풍속서 어디에서도 그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는데...
70% 이상이 행운의 괘로써 삶에 지친 민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책, ‘토정비결’ 저자를 둘러싼 미스터리 안에 이지함에 관한 진실이 담겨있다.
- 조선 최초의 양반 상인, 토정 이지함
이지함은 밥을 해먹기 좋도록 머리에 갓 대신 솥을 쓰고 다녔으며 마포강가에 흙집을 짓고 살았던 기인(奇人)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가 ‘토정’을 지은 마포는 지방의 산물과 서울의 시장이 최초로 만나는 상업과 유통의 중심지였다. 이지함은 마포의 상인들과 어울리며 장사에 관한 살아있는 지식을 배우고, 직접 박 장사를 하여 막대한 부를 끌어 모으게 된다. 당대 최고 사대부집안의 자손이었던 이지함.
상업이 가장 천대받던 시대에 그는 양반으로서의 권위와 부를 버리고 스스로 사회의 밑바닥에 내려간 것이다.
이지함은 자신이 터득한 장사방법을 주민들에게 전수해주고, 축적한 곡식을 모두 빈민들에게 나누어준다. 양반인 그가 장사를 한 이유, 그것은 바로 빈민들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 시대를 앞지른 선진적 경제사상을 발휘하다
쉰일곱이 되던 해, 재야에서 성리학 외의 다양한 학식을 접한 이지함에게 드디어 현실을 개혁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
선조의 등극으로 정국이 바뀌면서 그가 관리로 등용된 것이다.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었던 이지함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은, 옥 등의 산림자원과 해양자원을 개발, 해외에서 유통 시키자고 주장한다.
소수 지배층들이 독식하고 있는 자원을 국가가 관리해서 외국과의 통상을 통해 부를 축적하자는 것이다. 이 해외통상론은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선 파격적인 주장이었다.
이지함은 시대를 앞선 선구적인 경제사상가였다.
- 왕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
백성을 가난에서 구제하고자 하는 열망은 이지함을 21세기형 복지가로 만든다. 민중들의 가난이 유난히도 가혹했던 조선 중기, 그는 현대적 개념의 빈민구제기관 걸인청을 설립한다. 걸인들에게 단지 먹고 잘 곳을 제공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고, 그가 직접 관리감독까지 하였다. 이런 이지함이 죽은 후 백성들을 마치 제 부모를 잃은 것처럼 슬피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의 선정을 기리는 영모비를 세웠다.
"현감 이지함이 떠난 것을 잊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추모하기 위한 비"
한국사전 12회 – 기인(奇人) 개혁을 꿈꾸다, 토정 이지함 (2007.9.8.방송)
http://history.kbs.co.kr/
mi Yu :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셨네요.. 지금의 위정자들이 보고 배워야겠습니다!
네잎클로버 : 백성의 아버지 토정 이지함 같은 휼륭한 우리 조상님들 덕분에 우리 후손들이 굶주리지 않고 편안하게 살고 있지 않나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은샘 : 무속인 기질을 지닌 천재인 줄만 알았는데 애민사상의 실천가였네요.
나라의 리더들이 이지함 같으면 이 세상은 천국일텐데..........
짝짝짝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 왜 이런 위대한 분들이 역사에 묻혀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ㅠ 유익한 방송 감사합니다 짝짝짝
Hansol Jeong : 진짜 시간을 거슬러갔다가 보아도 될 정도의 인물이네요. 당대 최고의 민정가인 거 같습니다
[전설야담] 토정 이지함, 관상에 얽힌 두 가지 일화 [만물유래][전설따라 삼천리]
국내 독보적인 유래 전문 콘텐츠 사이트 만물유래(originbox.co.kr)가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삼각세모 : 선한 일을 하면 복받는다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재미있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눈에 관한 관상(觀相)중에 삼백안(三白眼)이 있다. 눈동자가 눈 가운데 있지 않고 아래에 있는 것을 상삼백안, 눈동자가 위에 매달려 있는 것을 하삼백안이라한다 둘다 매우 안좋은 관상
강릉머스매-펄스TV : 재밌습니다
kevin h. park : 자네는 병원을 차리게
피부과를 차리면 크게……
[전설야담] 토정 이지함과 이상한 지게꾼 [만물유래][어원 찾아 삼만리][전설따라 삼천리][전설의 고향]
국내 독보적인 유래 전문 콘텐츠 사이트 만물유래(originbox.co.kr)가 콘텐츠를 제공합니다.
모든지발리성철 : 토정이 청주 우암산에 있는 명당 자리를 아무도 건들지 못하게 경고했으나 어느 사이비 지관이 그걸 무시하고 건드렸다가 큰 봉변을 당한 일화도 있지요. 혹시 그 일화도 훗날 소개시켜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홍창식 : 잠깐들어와 보니
마치 오래전 밤에
라디오에서하던
전설따라 삼천리 를
듣는듯한 기분이드네요.
재미있게 잘들었습니다.
CH L : 잘 보았습니다.
시리즈가 계속 되기를!
이부자 : 사람은 남의말에 경청할줄 알아야하고
믿음과 지혜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것
잘배우고 뜻깊게 담아봅니다.
hollywood park : 옛날 '소설 토정비결'을 읽고서 토정 이지함에 대하여 조금 알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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